영천뉴스24/시와 연애를 하자(장병훈 편집위원)

슬픔의 진화 - 심보선

이원석(문엄) 2009. 5. 4. 09:49

슬픔의 진화

 

                                   심보선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 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 (하 략) ~

 

그 슬픔이 나를 진화시켜놓았구나

모서리같은 슬픔이 허락되지 않았던들, 진화는 없었구나.
개미는 달콤한 설탕을 탐한 댓가로, 진화가 될 수 없었던 것이구나.
그렇구나.

슬픔아, 미안했다. 너를 떠나려고만 발버둥쳤구나
샘 안의 둥그런 물도 슬픔의 모서리를 품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그래서 샘 안에는 정수精髓된 세계가 들어있었구나.

아, 슬픔의 모서리여, 그대는 나를 진화시키는 양식이었구나.
가로등 밑에서 눈물 떨구던 슬픔의 모서리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놓았구나.

 

   
▲ 장병훈 편집위원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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