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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 가야국의 부활을 기대하며(고령문화 제26호, 2011)

이원석(문엄) 2012. 2. 24. 14:30

 

‘잃어버린 왕국’ 가야국의 부활을 기대하며

 

이원석(수필가ㆍ영천문화원 사무국장)

 

대가야박물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가 “562년, 여러분이 계신 경주 신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라고 하기에 무심결에 “지금도 그 점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더니 관객들의 자지러지는 소리로 전시실이 뒤집혔다.

 

경주박물관대학 30기 동기모임에서 방문했으니 해설사는 모두가 경주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살고 있는 영천도 당시 가해자인 신라의 수도 서라벌 인근으로 신라에서 수도권 정도는 되었으니 미안한 마음을 가져도 이상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고령읍 가야금길에 자리 잡고 있는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은 가실왕의 명령을 받고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ㆍ수집ㆍ보존ㆍ전시해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우륵과 가야금’ 테마박물관이다.

 

우륵은 당시 전해지고 있던 여러 형태의 현악기를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으로 만들었으며 가야 각 지역의 향토성 짙은 음악을 고급예술로 승화시킨 악성이다.

 

가실왕은 대가야 말기의 왕으로 우륵, 신라 진흥왕(546~576)과 같은 시기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실왕은 우리 민족 특유의 악기로 민족의 얼을 담은 음악을 구상한 문화적 성군으로,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악기를 가야금의 형태로 통일시키고 우륵으로 하여금 각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담은 12곡을 짓게 하였다.

 

우륵이 가야의 가실왕을 명에 의해 작곡한 12곡은 下加羅都(하가라도), 上加羅都(상가라도), 寶伎(보기), 達己(달기), 思勿(사물), 勿慧물혜). 下奇物(하기물), 獅子伎(사자기), 居烈(거열), 沙八兮(사팔혜), 爾赦(이사), 上奇物(상기물)이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금관가야를 멸망하고 대가야를 압박해 오고 있는데 과연 가실왕은 한가하게 음악이나 즐기려고 가야금을 만들라고 명을 내렸을까?

 

아마도 가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강대국의 칼날 아래 살아남는 길은 가야연맹체의 튼실한 동맹밖엔 없었기 때문에 가실왕은 음악을 통해 가야국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가실왕은 우륵이 곡을 완성하기 전에 죽고, 대가야도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역사에 가정을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가야가 좀 더 긴 세월 동안 왕국을 유지하였더라면 우수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부강한 한민족의 부흥을 이끌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야는 6~7개의 소국들이 연합한 연맹체였으므로 신라나 백제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힘의 규합이 어려워 532년 금관가야와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차례로 복속되면서 역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가야는 이처럼 역사 초기에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문화는 신라나 백제보다 오히려 뛰어났다고 한다. 끝까지 항쟁해 미운털이 박힌 대가야는 신라에 의해 모든 것이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가야의 우수했던 문화가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단절되고 말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10월말 가야라는 문화역사성을 바탕으로 5개 시도 14개 시군이 모인 가야문화권협의회를 구성해 가야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등 공동 발전에 노력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제는 3국의 역사가 아닌 가야의 역사가 포함된 4국의 역사로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시ㆍ군간 유대를 더욱 강화, 가야문화권을 넘어 영호남 지역이 공동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약속한 만큼 ‘잃어버린 왕국’ 가야국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영천뉴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