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161. 파계리(巴溪里)
이원석(문엄)
2011. 11. 14. 16:40
1) 마을의 자연환경
국도에서 남으로 2km정도 떨어진 무학산을 배경으로 하는 산골마을로, 고경면 전체 벌판 대부분의 농업용수로 쓰고 있는 영천에서 가장 큰 ‘파계저수지’가 있어 작은 계곡과 주위의 산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2) 마을의 역사
이 마을의 개척자와 연대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370여 년 전에 밀양박씨가 처음 개척하였다 한다.
▶ 새밭골<신전곡(新田谷)> 근래 인구 증가에 따라 전지(田地)에 집을 짓고 새로운 촌락이 생겨난 데서 불리어진 마을로, 광복 이후 파계 저수지가 막히게 됨에 따라 패우리 주민 가운데 수몰된 여러 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 파계(巴溪)ㆍ패우(敗愚)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침입하여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쉬다가, 이 지방 주민들에게 두 차례나 크게 섬멸 당하고 말았다 한다. 그 이후 패우라고 부르다가 한일 합방 이후 행정구역 개편 시 흐르는 시내란 뜻에서 파계라고 명명한 것이 지금까지 파계로 불려지고 있다.
3) 마을의 특징
- 파계못 : 영천 최대의 저수지로 잉어, 송어 등의 물고기가 많아 연중 낚시꾼들이 많이 찾고 있다.
- 소산봉수대(所山烽燧臺) : 무학산 정상에 있는 소산봉수대는 동해안에서 직봉인 성황당봉수와 연결시키는 간봉으로 동으로는 안강에 응하고 서로는 성황당에 응하고 있다. 직경 16m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상 가운데는 묘소가 들어서 원형을 찾기 어렵다. 다만 영천향토사연구소에서 세운 표석비만 외롭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