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양평리(良坪里)
1) 마을의 자연환경
마을 남쪽에는 운주산 골짜기의 맑은 물이 흐르며, 서쪽에는 자호천이 흘러 농사짓기에 좋은 마을이다.
2) 마을의 역사
고인돌이 있는 양암부락과 운주산의 골짜기 물이 흘러가는 수평 부락을 합쳐 양평(良平)이라 하였다. 수평, 양암, 신평 일부가 합해서 되었다.
▶ 돌빼기ㆍ양암(良岩) 양평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서 마을 복판에 고인돌(Dolmen)과 비슷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중국 진시왕 당시 만리장성을 구축키 위하여 필요한 바윗돌을 운반하다가 때마침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바윗돌을 버렸다는 전설이 마을에 전해 오고 있다.
▶ 새말<신촌(新村)> 돌빼기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서 경주김씨가 주성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물 맑고 공기 좋은 마을로 상부상조하는 협동심이 강한 모범마을이다.
▶ 수평(水坪) 양평리 입구 돌빼기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거목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숲들<임평(林坪)>이 어원인 것 같으며 각성이 살고 있다. 마을 앞에 운주산의 맑은 물이 흘러 일찍부터 들이 형성되었으므로 수평이라는 지명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3) 마을의 특징
- 지석묘(支石墓) : 이 고인돌은 남방형에 속하는 것으로 4개의 지석 위에 장방형의 반석을 얹은 것이다.
높이 22m, 폭 2.6㎝, 세로 1.55m인 돌빼기의 지석묘는 예부터 유명하다. 자양면에서 내려오는 계천이 이루는 평야가 서로 합쳐지는 삼각지대의 구릉지. 예부터 군사적, 경제적인 요지인 듯하다. 1962년에 사리(莎里)에 임고지(臨皐池)가 건설되어 구릉야산의 밭을 논으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경지정리를 수년간에 걸쳐서 추진할 단시 화살촉<궁전(弓箭, 돌을 갈아서 제작)>이 출토된 사실을 미루어보면 이 마을은 옛날부터 아주 요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천 임고 양평리 ‘돌빼기’를 아시나요?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년 정월 대보름에 보름달을 제일먼저 보면 시집, 장가든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동네에서 나이든 처녀총각들은 죄다 여기로 모여들었습니다.”
40대로 보이는 한 주민은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마을 복판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서 마을명이 붙여진 임고면 양평1리 양암(일명 돌빼기)마을. 선사시대의 유물인 돌빼기는 이름 그대로 마을의 상징이다.
자양면에서 내려오는 계천이 이루는 평야가 서로 합쳐지는 삼각지대의 구릉지인 점과 1962년 사리에 임고지가 건설되어 구릉야산의 밭을 논으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경지정리를 수년간에 걸쳐서 추진할 당시 화살촉이 출토된 사실을 미루어볼 때 예로부터 군사적, 경제적으로 요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높이 2.2m, 가로 2.6m, 세로 1.55m인 이 지석묘는 중국 진시황 때에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필요한 바윗돌을 운반하다가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버렸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남방형에 속하는 것으로 4개의 지석위에 장방형의 반석을 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