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사리(莎里)
1) 마을의 자연환경
천장산에서 정서로 뻗은 일지맥이 마을의 남쪽을 이루어 구릉야산을 형성하고 북쪽은 높은 봉을 경계로 영천댐을 이루는 자양면과 접하고 있다. 우봉골에서 발한 계곡수와 천장산, 운주산에서 발한 계곡천이 서로 합류되어 작은 분지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두 계곡은 좌우가 매우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며 가정(柯楨)은 정남향으로 북쪽은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감나무골은 남쪽이 막혀 있기에 감이 잘되며 담골, 우봉골, 차골을 계곡 입구로부터 오솔길을 따라 지형에 알맞게 형성된 마을이다.
2) 마을의 역사
▶ 가정(柯楨) 조선 숙종 때 성가정(成柯楨)이란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는데 그는 불교를 신봉하면서 많은 병자를 치료하여 덕망을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가정(柯楨)이라 하였다고 한다. 담골 동쪽에 있다.
▶ 감나무골ㆍ감남골 가정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감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든 감나무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 비교적 이주가 적어 전주이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으며 숲을 이루었던 감나무는 점점 사라지고 한두 그루의 고목만 남아 전통을 지니고 있다.
▶ 담골ㆍ사곡(沙谷)ㆍ장곡(墻谷) 신라시대 원(員)이 살았던 감영(監營)이 있었다고 하며 병자호란 때 이 부락 주변에 성을 쌓아 그 안에서 피란을 했다고 하여 담골<墻谷>으로 불려진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마을이 있는 골짜기가 사방 담같이 둘려 있으므로 이렇게 칭하였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경주군 북안면(北安面)에 속했으며 의성김씨가 주성이다.
▶ 우봉골ㆍ우봉곡(愚峰谷) 차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 모양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고 또 고경면(古鏡面) 사람들과 사리(莎里) 사람들이 소를 많이 먹였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 전해진다고 한다.
▶ 차골ㆍ차곡(次谷) 담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한 골짜기(담골)를 지나 그 다음에 있는 골짜기<차곡(次谷)>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각성이 살고 있으며, 골짜기의 물이 아주 차다고 한다.
3) 마을의 특징
담골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백암(栢巖) 김응택(金應澤, 1551~1597) 선생의 자손들이 420여 년 간 세거해온 마을이다.
백암(栢巖) 김응택(金應澤, 1551~1597)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선생의 자는 취용(就用), 호는 백암(栢巖), 관향은 의성, 참봉 순번(順蕃)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때 근처에 있는 백암산(柏岩山) 고성(古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천의 작산, 도천 등지에서 적을 무찔러 정략장군, 훈련원 부정이 되어 화산군 권응수 장군과 함께 울산 반구정(伴鷗亭)에서 싸웠다.
또 도산전(島山戰)에서 순국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증직되어 문절공(文節公)의 시호를 받고 백암사(柏岩祠)에 제향되었다가 1979년 봄 권응수ㆍ권응심 장군과 함께 귀천서원(龜川書院)에 추향(追享)되었다.
그러다가 85년 3월 귀천서원으로 부터 백암사(柏岩祠)인 강의당(講義堂)으로 봉안하다가 89년 3월에 성인묘(成仁廟)에 봉안하여 춘향을 지내고 있다.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은 자손들이 세거해온 마을이라 충과 의가 물씬 풍기며, 선생의 뜻을 영구히 계승하려고 하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