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죽곡리(竹谷里)
1) 마을의 자연환경
기룡산에서 남서간으로 뻗은 일지맥이 갑자기 낮아져서 구릉야산이 되고 다시 이것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계곡을 형성하였다. 남으로 뻗은 산맥이라 북은 높고 동서는 낮으며 남쪽은 계곡이 되었다. 북쪽에서 발한 계곡천은 마을의 서쪽 산기슭을 흐르며 그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2) 마을의 역사
▶ 죽천(竹川) 약 190년 전 나씨(羅氏)성을 가진 선비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하였다. 옛날 이 마을 앞 냇가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죽천이라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땅을 파면 썩은 대나무 뿌리가 나오고 있다.
▶ 건넌골<월천(越川)) 약 220년 전 정주선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다. 마을 이름은 마을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마을 앞 내를 건너야 올 수 있다고 하여 건넌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절골<사곡(寺谷)> 약 220년 전 마을 위에 성명 미상의 스님이 절을 짓고 불법을 전파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절은 소실되었고, 마을도 없어졌으나, 절터는 지금도 남아 있다.
▶ 윗대내실<상죽곡(上竹谷)> 조선조 성종 때 황충신(黃仲信)이란 선비가 처음 이곳으로 피난차 와서 살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 장등개울 마을 뒤로 흐르는 계곡의 물이 홍수가 질 때는 범람하여 마을에 피해가 막심하였다. 동민들이 산 중턱을 파서 수로를 만들려고 산을 자르는 도중 붉은 피가 흘러 나와 이상히 여겨 중지하고, 그 후 유명한 도사에게 물어 본 결과 ‘산이 동맥을 잘랐으니 앞으로 후손들이 잘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3) 마을의 특징
- 원애재(円厓齋) : 숙종 때 종사랑(從仕郞)을 역임한 이위(李煒) 선생의 재사
- 영모재(永慕齋) : 조선조 단종 시대에 순흥부사로 재직하면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탄로되어 참형을 당한 대전 이보흠(1397~1457) 선생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
- 죽람정(竹覽亭) : 조선조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司諫)을 역임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죽곡에서 학문에만 몰두한 황윤 선생의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