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1. 11. 14. 08:39

1) 마을의 자연환경

기룡산의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 달리다가 둘로 갈라져 그 가운데 계곡을 만들고 분지가 형성되어 마을이 자리 잡게 되었고 산맥은 서쪽으로 뻗어내려 오면서 점점 세력이 약해져 야산을 이루게 된다. 남북이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가리워져 있으며 그 가운데 들이 들어서있고 기룡산맥에서 발원한 작은 시내가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공디기ㆍ공덕(公德)ㆍ천상리(川上里) 고려말엽 성명미상의 중이 이곳에 공덕사(公德寺)란 절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면서 살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절은 없어지고 이 절의 이름을 따서 공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천상리는 일제 때 잠시 불려진 이름이라 한다.

 

▶ 댕대이ㆍ아랫뜸ㆍ당다리(堂多里)ㆍ대왕(大旺) 1780년경에 대왕사란 절이 있었는데 그 절 이름을 따서 대왕리 또는 댕대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그 뒤 절은 없어지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 위뜸ㆍ탑골<塔谷> 공덕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탑곡사(塔谷寺)란 절터에 삼층석탑이 세워졌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3) 전설

- 회나무 : 둘레 약6m 이상이며 수령은 620년 정도로 추측되며 420여 년 전 나무 밑에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나무가 운다고 한다. 현재 들 복판에 고목(古木)이 외로이 서있다.

- 탑골<塔谷> : 고려말기에 이 골에 공덕사(公德寺)란 절을 짓고 삼층석탑을 세웠으나 절은 소실되고 탑신만 남아 방치되다가 1988년 시비로 울타리를 두르고 지방문화재급으로 분류해 보호 관리하고 있다.

 

4) 마을의 특징

- 공덕리삼층석탑 : 시대는 고려초기로 높이 2.1m이다. 이규찬씨 소유의 이 탑은 이곳에 있던 공덕사라는 절이 없어진 후 서씨문중의 송계정사에 옮겨졌다가 1973년에 동리입구에 옮겨졌고, 1974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여러 가지 탑재로 이루어진 이 탑이 서씨문중의 송계정사로 옮겨진 것은 거리가 멀어 관리하기가 불편하다고 해서인데 이 탑을 옮긴 후 흉사가 자주 발생하여 동리입구로 옮긴 것이고, 동민들의 원성으로 또다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라 한다.

- 송계정사(松溪精舍) : 임란 때 의병으로 출정한 아버지 서자이(徐自邇) 선생이 병환으로 귀가하자 대신 어린나이로 출정한 서호(徐浩) 선생의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