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1. 11. 14. 08:34

1) 마을의 자연환경

보현산(1,124m) 준령이 동북간 3km 떨어진 지점에 우뚝 솟아있고 보현산맥의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 마을의 앞뒤를 감싸고 있으며 고현천(古縣川)이 마을 앞을 가로질러 옥석(玉石)같은 바위틈을 굽이굽이 감돌아 은빛같이 흐르고 있어 과연 옥계라는 마을이름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중(中)산간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비집거리ㆍ옥계(玉溪) 보현산에서 흐르는 냇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보를 막고 제방을 구축한 사람들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건립하고 짐을 지었는데, 집이 있는 곳을 비집거리라고 한다. 현재는 옥계리의 중심지이며 옥계라 통칭하고 있다. 옥계라는 이름은 개울에 둥근 구슬 같은 암반이 많고 물이 맑아 불리어진 이름이다.

 

▶ 새마을<신리(新里)>ㆍ대제(大堤) 이 지역에 영월엄씨(寧越嚴氏)가 살고 있을 때는 대제라 하다가 큰 화재로 많은 인가가 소실되고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새마실ㆍ새마을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 느러리ㆍ금계(琴溪) 임진왜란 이전부터 음지쪽은 경주이씨가, 양지쪽은 김해김씨 등이 1백여 가구 살면서 서당골에 서당을 짓고 글을 가르쳐 어사까지 배출한 마을이었다. 동네 어귀에 있는 멍에바위를 없애고 난 뒤부터 차차 쇠퇴하였고 개울물이 느릿느릿 흘러간다고 하여 느러리라 불리어지고 있다.

 

3) 마을의 특징

- 비녀보 : 이 마을은 중(中)산간촌으로 마을이름과 같이 하천이 바위로 형성되어 있어 지금의 버름보 자리에 보를 막아야 되는데 보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 보의 책임자인 시아버지가 매일 정(釘)으로 바위를 뚫는데 며느리가 점심을 갖고 와서 머리에 꽂고 있는 비녀로 그 바위를 쪼아 마침내 통수(通水)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일을 기리는 비가 보 입구에 세워져 있고 이 보를 일명 ‘비녀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마을에는 뚜렷한 문화재는 없으나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비집걸 마을에 서있다. 수령은 32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면 둘레 6m, 수고 20m 정도가 된다.

- 양우당(養愚堂) : 조선 인조 때 박학했던 김복천(金馥天) 선생의 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