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문화유산 자료/영천 지명유래 및 마을변천사
88. 석촌리(石村里)
이원석(문엄)
2011. 11. 14. 08:30
1) 마을의 자연환경
팔공산에서 뻗은 지맥이 마을의 서편을 가로막고 신녕천의 흐름이 주위를 감돌며 앞쪽 동편은 임란 시의 격전지였던 박연(朴淵)덤이 가로막아 기암절벽을 형성하며 남으로는 저 멀리 넓은 평야가 펼쳐져서 예부터 인류들의 유적들이 많은 곳이다.
2) 마을의 역사
▶ 석촌(石村) 본래 영천군 질림면(迭林面) 지역으로 바위가 있었기에 석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인조 때 경주김씨 형제가 현 화북면 자천리에서 이주하여 형의 호 석정(石亭), 동생의 호 계정(溪亭)의 첫 자를 따서 석계정(石溪亭)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석촌이라 하여 화산면에 편입되었다.
▶ 와룡(臥龍) 석촌 남쪽 1.5㎞ 지점에 있는 마을로 앞쪽으로 시내가 흐르며 뒷산의 모양이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와룡이라고 불려졌다.
▶ 박연(朴淵) 마을 앞의 절벽으로서 1592년 임진왜란 때 승승장구 북진하는 일본군을 이곳에서 거의 전멸시킬 정도로 승전을 했던 곳이다. 임진년 7월 14일 왜군은 ‘봉고어사’라 속이며 300여명이 군위에서 영천 쪽으로 내려왔다. 권응수, 정응거, 정세아, 정대임, 홍천뢰, 신해 등이 합세하여 참수 30여급, 총통 25자루, 창검 40여개와 말들을 뺏은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