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1. 11. 13. 09:38

1) 마을의 자연환경

화산의 지맥이 남으로 두 갈래 뻗어 오는 그 사이에 화산지(華山池)가 있고 또한 동편의 산맥중간에는 노고산(老姑山, 557m)이 높이 솟아 있으며 남북으로 연봉들이 멀리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계천(溪川)은 화산령에서 발하여 정남으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구릉야산이 전개되어 있다.

 

2) 마을의 역사

▶ 뒤실ㆍ딘실ㆍ두야(豆也) 490여 년 전 윤준(尹俊)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당시 콩이 잘 되었고, 골짜기 지형이 야(也)자 모양으로 생겨 두야동이라 하고 웃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 아랫갱빈ㆍ신기(新基) 윤상호(尹相浩)라는 선비가 1875년에 개척하여 자갈이 많은 하천 벌판에 새로운 터를 잡아 살았다 한다. 그 후 신기라 이름 하였다 한다.

웃바린내ㆍ웃바래내ㆍ상발래천(上發來川)ㆍ상직천(上直川)ㆍ신양(新陽) 아랫바린내 위쪽에 있는 마을로 맞은편에 아랫바린내로 곧게 내려가는 냇물 즉 바른내<직천(直川)>가 있다고 해서 웃바린내라 불리어진다는 이야기와, 가사골의 옥녀봉 형상이 중이 가사(袈裟)를 등에 걸고 있는 것 같고, 이 동네가 중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바랫대와 같은 위치에 있다하여 웃바랫대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원래는 신덕리의 아랫바린내와 관련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행정구역상 서로 다른 동에 속해 있어 점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 참나무장이ㆍ아래실ㆍ아랫마을 딘실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참나무, 정자목(亭子木)이 있어 이름 지어졌다 하며 지금도 20평 정도의 느티나무 숲이 있고 여름에는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다.

 

▶ 웃마을ㆍ윗동 딘실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외에도 옛날에 20여 가구나 살고 있었다는 소근곡, 옛날 그릇을 구웠다는 사기골, 기와를 구웠다하며 현재는 ‘개골’이라고 하는 기와골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3) 마을의 특징

- 귀후재(歸厚齋) : 연산군의 폭정을 지탄하다가 이곳으로 이거한 한동(韓棟) 선생의 재사

 

※ 송계(竦溪) 한덕련(韓德鍊) :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조선조 말에 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한 고제(高弟)로 학행이 뛰어난 유자(儒子)이며 일제에 비협조 항거하여 절의를 굳게 지켰다. 심락당(尋樂堂) 상재실(相在室)을 지어 많은 제자를 육성하였다. 청빈하여 손님이 오면 대접할 것이 없어서 ‘백구탕’(냉수를 끓여서 식힌 물)을 대접하였다. 광복 후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