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매양리(梅陽里)
1) 마을의 자연환경
팔공산(1,192m)에서 동으로 뻗은 일지맥이 점점 낮아져 구릉야산을 형성하고 다시 평지가 되었으며 북쪽은 화산(華山, 828m)의 연봉들이 점차 낮아져 혈암산(穴岩山)을 만들어 진산(鎭山)이 되고 동으로는 야산이 전개되어 있다. 갑령(甲嶺)에서 발한 신녕하천(新寧河川)이 마을의 동쪽으로 흐르며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다. 편리한 교통, 풍부한 농산물뿐만 아니라 고인(古人)들의 유적이 많다.
2) 마을의 역사
매양리는 별삼(別三), 별사(別四), 별오(別五), 어일(於逸), 별십일(別十一)의 일부와 별이(別二)의 일부가 모여서 된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시 이와 같이 칭하게 되었다.
▶ 별관(別館) 왕산리의 일부와 매양리를 합해서 부르는 말로서, 약 1300년 전에 경주이씨가 왕산1리 부근에, 경주김씨가 왕산2리 부근에 각각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후 부산에서 서울로 통하는 국도변 길목에 장수역(長水驛)이 자리 잡고 있어 관리 및 나졸과 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본관(本官)의 서편으로 강 건너편에 위치하여 별관이라 했다고 하나 지금은 구별하여 부르는 이가 없고 별삼ㆍ별사ㆍ별오는 매양리에 속해 있다.
▶ 보도말거리 옛날 식량난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울 때 들판의 농작물을 감시하는 막을 짓고 밤마다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며 보초를 서던 곳으로 그 주위 인가를 통틀어 일컫는 이름이며 60여 년 전만 해도 막이 있었다고 한다.
▶ 서마실ㆍ섬마을 신녕천(新寧川), 즉 금호강 지류가 좌우로 흐르는데, 옛날에 천재지변으로 이 동네가 강을 낀 섬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사리(四里) 별관 안에서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1300여 년 전에 경주김씨가 개척하였다 하며 별관당시 불리어진 이름이 지금까지 사리라고 불리고 있다.
▶ 어를ㆍ어리골ㆍ어일(於逸) 별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산의 골짜기가 깊기 때문에 피란 시 안식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의 위치가 생활하기에 불편하여 지금은 거의 빈 마을이 되었다.
▶ 팔반 매양리가 1반부터 8반이 있는데 8반지역이라 하여 8반이라 칭한다.
▶ 우등골 산등이 소등과 같은 모양으로 생겨 우등골이라 전하고 있다.
▶ 소마이 옛날 목동들이 소와 말의 먹이터로 이름하여 소마이라 불러오고 있다.
▶ 성지골 옛날사람들이 가화만사 하고자 정성들여 빌었던 골이라 하여 성지골이라 칭한다.
▶ 고방골 약 520년 전에 고방사라는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고방골이라 칭하여지고 있으며, 지금도 옛 사찰터와 기왓장 일부가 남아있다.
▶ 평덕골 병풍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평덕골이라 칭하며, 지금도 바위가 많다.
▶ 바람골 북풍이 이 골짝으로 몰려들어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기 때문에 바람골이라 전하고 있다.
▶ 소문골 아무리 한발이 계속되어도 이 골짝의 물은 마르지 않고 흘러나오는 골짜기이기에 소문골이라 한다.
3) 마을의 특징
각 성씨별로 살고 있는 면소재지 마을로서 이 마을에 신녕중ㆍ영천정보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