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1. 11. 13. 09:29

1) 마을의 자연환경

보성리(甫城里)의 뒤 산맥이 연이어져 화산면(花山面)과 경계를 이루어오다가 다시 동북쪽으로 계곡이 생겼으며 계곡의 북쪽은 구릉으로 되어있고 남쪽은 좁은 평지를 형성하여 그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은 대왕산(大王山)에서 발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호당리(虎堂里) 앞에서 신녕천과 합류한다.

2) 마을의 역사

▶ 구신기(舊新基) 와우형(臥牛形)의 산 밑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원래 이 마을이 있었는데 주민이 모두 나가고 폐동(廢洞)되었다가 다시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구신기라 부르기도 한다.

▶ 소내<우천(牛川)> 소내를 한자로 표현하면 우천(牛川)이 되는데 천(川)자의 훈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일설에는 옛날 이곳에 담양전씨(潭陽全氏)네들의 소계사(蘇溪祀)란 서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소계사의 소(蘇)자는 음을, 계(溪)자는 훈을 따서 지은 것으로 지금까지도 이 이름으로 통하여진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마을 앞산이 와우형이며 그 밑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다 해서 와우형의 우(牛)자와 냇물의 천(川)자를 차용함으로써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옛날에 이곳에 담양전씨(潭陽全氏)들의 소계사즉계자(蘇溪祠卽溪字)는 ‘천(川)’을 가운데 넣고 앞산의 모습이 와우형(臥牛形)이라 우자(牛字)를 합해서 우천(牛川)이라 했다 한다. 우리말로는 ‘소내’이다. 소내는 어부(魚浮), 하우(下牛), 월평(月坪), 상평(上坪), 용연리(龍淵里)의 일부가 합하여 된 마을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군 청통면에 속하게 되었다.

3) 마을의 특징

- 소계사(蘇溪祀) : 영천의 옛 이름인 영주목사(永州牧使)로 재임하다가 사임하고 계속 영천에 머무른 송계(松溪) 전보(田普, 1370~1434) 선생의 유업을 찬양하고 위패를 제향하고 있다. 선생은 백성을 잘 다스렸기에 군민이 잘 따랐으며 읍(邑) 선생이라 칭했다. 이 지역의 개척자란 큰 공과 후배양성의 공 등을 미루어 문화재지정이 요청되고 있다.

- 천목재(千木齋) : 철종 때 학자인 이만현(李萬鉉) 선생의 재사

- 모송재(慕松齋) : 영조 때 학문에 정진하여 향내에서 추앙을 받던 조미수(趙微壽) 선생의 재사

- 백원정(百源亭) : 영조 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역임한 김상재(金常載) 선생의 재사

- 어은재(漁隱齋) : 세종 때 참봉을 역임한 손순조(孫順祖) 선생의 재사

- 영모정(英慕亭) : 조선조 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한 제갈기량(諸葛璣涼) 장군의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