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용천리(龍川里)
1) 마을의 자연환경
동으로는 넓은 들판이 있으며 서쪽은 팔공산의 일지맥이 동으로 뻗어오다가 갑자기 낮아져 구릉야산을 이루다가 다시 솟아 연봉을 이루어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쪽은 저멀리 신녕평야(新寧平野)가 바라보이며 마을 앞을 신녕천이 흐르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용내ㆍ용천(龍川)ㆍ용호(龍湖)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정헌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으며 용내에는 용 한 마리가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마을 앞에 조그마한 호가 한 있었기에 용과 호를 합쳐서 마을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부용(夫龍) 1598년경 최명해(崔明海)라는 사람의 혈족 삼가(三家)가 대농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용천리(龍川里)의 용 가운데서 지아비용의 도움을 받은 탓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부용(夫龍)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최씨의 혈족들이 해마다 용제(龍祭)를 올렸다고 한다.
3) 마을의 특징
-‘부용(夫龍)’전설 : 임진왜란후인 1598년경 최명해(崔明海)라는 선비 친척 3집이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농사가 잘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물이 적어서 농사에 지장이 많았으나 이곳의 농사는 매우 잘 되었다. 이는 지아비용<부용(夫龍)>이 도사리고 있어서 주위의 수원을 모두 끌고 오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 참버드나무 : 마을 앞에 두 그루가 있는데 줄잡아도 200~300년은 묵은 듯하다. 이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이자 정자요 회의장소이다. 마을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용신제(龍神祭)를 지냈지만 지금은 지내지 않아서 그런지 이곳 부용은 모두 빈곤한 사람들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