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1. 11. 13. 09:27

1) 마을의 자연환경

남으로는 대평리를 거쳐 사일못<사일지(泗溢池), 풍락지(豊樂池)>이 멀리 가물거리며 동으로는 구릉지를 넘어 서산동(瑞山洞)과 사모산(思母山)이 있고 북으로는 작은 들을 거쳐 용산제(龍山堤)와 못둑이 보이며 서쪽으로는 저 멀리 팔공산의 연봉들이 구름에 싸인 채 내려다보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 덕리(德里) 장영한(張永翰)이라는 선비가 320여 년 전에 개척하였으며 서당마을과 두 자연부락으로 되어있는데 그중에서 큰 부락이라고 해서 덕리(德里)라고 불렀다가 약 85년 전 행정구역 개편시 신덕(新德)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 새터<신기(新基)> 덕동마을 서편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에 마을이 새로 생겼다고 하여 오늘까지 새터라고 불리어지고 있으며 옛날에 동리가 있었단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대부분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마을에 사일아트가 자리잡고 있다.

▶ 서당마<書堂村> 덕동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마을이 번창하여 이곳에 서당이 세워졌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초등학교가 마을에 들어서 있었다.

▶ 성리(城里) 동리 밖에 있는 산맥이 마치 성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여 동리 이름을 성리라 부른다고 한다. 약 170여 년 전 한후영(韓厚榮)이라는 선비가 신덕이라 개칭하였다.

▶ 학리(鶴里) 땅의 모양이 마치 날아가는 학과 같다고 하여 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학의 양쪽 날개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을 지으면 지탱을 못한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학의 등 부분에 동리가 들어서 있다. 꼬리 부분에는 큰 바위 2개가 있는데 그것을 학란(鶴卵)이라 전하고 있다.

▶ 한티<한지(韓趾)> 한티에는 임진왜란 때 모아두었던 돌더미가 있으며 옛날부터 한씨(韓氏)의 터전이라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3) 마을의 특징

- 성산(城山)봉수대 : 국유로 청통면 신덕리에 있는 이 봉수대는 학리에 있으며 직경 4m, 높이 2m로 조선시대 것으로 토축이다. 남쪽으로는 쌍계리봉수대와 북쪽으로 계지리 여음현봉수대와 연결되고 둘레 30m, 높이 3m 정도로 토성을 쌓아 봉수대를 만들었으며 그 중심에는 봉화단이 있다.

- 청통지구고분(淸通地區古墳) : 청통면 신덕ㆍ대평ㆍ계지리에 걸친 이 고분은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토분(土墳)으로 크기는 3m×10m, 5m×16m, 2.5m×14m이다.

신덕리고분은 높이 3m, 둘레 10m 정도였고 대평리고분은 높이 5m, 둘레 16m 정도였으나 1960년 모두 도굴 당하였다.

또한 계지리고분은 구전에 의하여 김오위(金吾位) 대장군묘라고 부르는데 높이가 1.5m 정도이고 둘레가 14m 정도이며 1920년대 일본인들이 도굴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현재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