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삼호리(三湖里)
1) 마을의 자연환경
남으로는 넓은 들판을 지나 구릉지가 전개되고 동으로 원기리(元基里)와 접하여 오계리에 이르며 그 너머에는 못이 보인다. 서북쪽은 평야가 전개되다가 저 멀리 팔공산의 연봉들이 남으로 뻗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바로 북쪽에 금호강이 흐르고 있으며 옛날에는 범람하여 마을을 위협했으나 지금은 상류 영천댐의 수량조절과 튼튼한 제방공사로 인하여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2) 마을의 역사
삼수(三水), 가라(加羅), 용호(龍湖)의 3개 마을이 합한 것이다. 약 320여 년 전에 생긴 강정(江亭)과 가라골(駕羅谷) 마을을 합하여 삼호리가 되었고 약 120여 년 전 홍수로 3개의 소(沼)가 생겼다.
▶ 암마ㆍ가라골ㆍ가라곡(駕羅谷) 조선시대 마을이 설립되었으며 마을의 모양이 말<馬>과 같이 생겼고 이곳에 비단을 널어 말렸다 하여 가라골이라 불렀으며 약 120여 년 전 이 마을에 큰비로 인하여 3개의 소가 생겼다고 하여 삼호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 강정(江亭) 이 마을 앞 300m쯤에 금호강의 지류인 창수(蒼水)가 유유히 흐르고 마을에는 약370년 전 창주서원(蒼州書院)과 서호정(西湖亭)이 있어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강정이라 불렀으며 이 마을에 길흉사가 있을 때 이 정자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창녕조씨가 주로 살고 있는 동네 중앙에 위치한 창주서원에는 충정공(忠貞公) 정재(靜齋) 조상치(曺尙治) 선생의 신도비가 서있다. 이 비는 조선 세종 1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선생이 집현전학사를 거쳐 부제학에 올랐다가 세조가 즉위한 후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단종에 대한 충의를 지켜 사퇴하고 이 마을에 와서 살다가 죽은 선생의 덕을 기리고 있다.
▶ 삼성(三星)ㆍ삼수(三水) 삼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가라골 남쪽 삼성산 밑에 있어서 삼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까닭인지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럽고 부지런하다.
▶ 얌사이ㆍ야무산(野無山) 삼성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뒷산에서 양을 많이 길렀다고 하여 양산(羊山)이라고 하다가 얌사이로 변했다고 한다.
▶ 숙재 옛날 숫기왓장으로 못을 막았다 하여 숙재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3) 마을의 특징
- 창주서원(蒼州書院) : 조선 단종 때 충정공(忠貞公) 조상치(曺尙治) 선생의 향사를 받드는 서원. 후일 선조 때 손자인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ㆍ조한영(曺漢英) 선생 및 병애(屛厓) 조선장(曺善長, 1661~1726) 선생을 추향했으나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1913년에 복원되었다. 정종 2년(1400)에 창건하여 창주사(蒼州祠)라 했다가 후에 개칭했다. 선생의 신도비가 있다.
- 의락당(宜樂堂) : 임진왜란 때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여러 고을사람과 더불어 큰 공을 세운 의락당(宜樂堂) 조경(曺瓊) 선생의 정자
- 필유재(必有齋) :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을 지낸 조맹겸(曺孟謙) 선생과 급제한 조숙겸(曺叔謙) 선생의 재사
- 서호정(西湖亭) : 고종 때 학문이 탁월하고 덕망이 높은 조병소(曺秉韶) 선생의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