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냉천리(冷泉里)
1) 마을의 자연환경
금호평야에서 가장 넓은 곳에 있는 마을로 동북쪽은 봉수산과 유봉산 그리고 동남으로는 채약산의 봉우리가 선명하게 멀리 보이며 서쪽으로는 금호평야를 지나 팔공산의 연봉이 남으로 뻗은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남으로는 들을 지나 금호강이 흐르고 있고 동으로는 신월리와 관정리가 접하고 있다. 넓은 평야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고대(古代)에 사람이 정착했을 것으로 보여지며 유적들도 많다. 마을의 북쪽이 모두 점토질(粘土質)이라 넓은 면적의 점토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2) 마을의 역사
▶ 찬샘ㆍ찬새미ㆍ냉천(冷泉) 마을 동쪽 500m지점에 약 20평 정도의 땀띠가 사라진다는 찬물이 나오는 샘이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지금은 거의 매몰되고 2평 정도의 샘이 있을 뿐이다.
▶ 중보 냉천 서쪽에 있는 마을로 가운데 보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동내갓 찬샘과 중보마을 사이에 있는 산이다. 도토리ㆍ버드나무ㆍ당나무가 7, 8그루 있는데 둘레가 3~4아름이 된다.
마을주민이 말한 냉천리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냉천(冷泉)과 덕성(德城)의 일부로 된 마을이다. 냉천은 마을 동쪽 500여m 지점에 약20평 정도의 찬물이 솟는 샘이 있다. 여름에 땀띠가 없어질 정도로 차고 약효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매몰되고 약2평 정도의 샘만 남아있다.
중보는 냉천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보가 있어서 생긴 마을이다. 두 마을 사이의 산에 거목들이 있어서 이 나무들이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한다. 나무의 종류는 굴참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가 8본이고 둘레가 3~4아름이나 된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추앙하며 적극 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冷泉里)는 신월, 봉죽, 관정, 황정 등과 함께 거여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조정시 금호면과 거여면이 통합됨에 따라 금호면으로 속하게 되었고, 1973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이 되었으며 1988년 5월 3일 마을 이름이 냉천동에서 냉천리로 바뀌었다.
마을의 구역을 보면 북쪽으로는 금호초등학교앞 도로까지, 동으로는 경주우회도로(금호~경주간 28.4km 2004년 개통)인 냉천교차로와 읍사무소에서 황정가는 길의 송전철탑 아래 거여보 수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남으로는 어은숲~금호강건너 대농미곡처리장 앞 도로까지, 서로는 우체국 동쪽 수로까지가 냉천구역으로 남북이 1.7km, 동서가 1.8km에 달하며, 중심지인 금호초등 앞 기준 경도는 128° 53' 6.3", 위도는 35° 55' 50.2"이고 고도는 61m이다.
2010년 현재 금호읍 33개 리 191반 5,838세대에 12,533명이 살고 있는데 냉천1리에는 7개반 294세대에 667명이, 냉천2리에는 10개반 319세대에 724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교대, 덕성리와 더불어 금호읍 소재지를 형성하고 있다.
냉천마을의 자연환경은 금호평야에서 가장 넓은 곳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는 봉화산과 유봉산이, 남쪽에는 채약산이, 서쪽에는 팔공산과 환성산(무학산)이, 북쪽에는 대미뒷산이 병풍처럼 금호평야를 감싸 안고 있다.
그 가운데 흐르는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1969년 경지정리가 된 171ha의 평야는 점질토로 벼농사가 성행하였으나 1980년경부터 시작한 포도농사는 비가림 재배로 들 전체가 바다를 이루며 영천포도의 명성을 잇고 있고, 남쪽은 충적토로 사과농사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지금은 복숭아재배와 드문드문 공장이 들어서 있고, 강 남북을 연결하는 길이 265m, 폭 10m의 금창교는 1999년 준공되었다.
2010년 8월 마을의 역사를 찾아 먼저 찬샘을 찾았다. 찬샘은 냉천리 마을 동쪽 거여보 도랑변에 있는데 포도밭 속에서 지금까지 메워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고, 마을이 생기고부터 존재했던 마을 앞 공동우물은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폐쇄하였으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죽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 옛 모습과 같지는 않지만 흄관으로 만들어 복원되어 철재 뚜껑으로 덮여있고, 344번지에 위치한 마을회관과 구판장은 1996년에 지어졌으며 학자수라 부르는 오래된 회화나무도 마을 곳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마을 앞에 버드나무와 같이 있었다는 돌방아간은 경지정리 시 없어졌고, 그 앞에 있던 가도라는 일본인이 살던 일본식 주택은 1980년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양옥집으로 변해 있고, 해방전 가도와 함께 그의 아들 새찌, 치까이가 살았고 그의 아내는 한국인들이 일을 열심히 안한다고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권달진(90세)씨가 전한다. 또한 마을 뒤 도로변 417-20번지에는 대구시내버스 808번(종전 35번) 종점이 1991년부터 설치되어 주민들의 통행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예전에 동제를 지내고 그네를 타던 431번지 동내갓에는 영천시 농업기술센터 금호상담소(1976년)와 냉천2리 경로당(1996년)이 들어서 있고, 300여년된 참나무와 느티나무, 아카시아 등이 10여 그루 있었으나 참나무는 5년여 전에 죽었으며 그 자리에 마을 정자가 2009년에 세워졌고 대문쪽에 있던 마을공동 상여집도 장례문화의 변화와 함께 1970년대에 사라졌다.
찬샘이 마을은 오래전에 형성된 마을이었으나 금호초등학교(개교 1923. 4. 26) 앞에는 지금부터 약 70여 년 전에 김상열(김상도씨 4촌)씨가 처음으로 학교 앞에 가게를 지었을 정도로 벌판이었다 하며, 교정에는 1987년에 실내체육관, 1992년에 경상북도립 금호공공도서관이 설치되어 읍민의 복지에 기여하고 있고, 학교 앞에 포교사라는 절이 있었고 현재에도 은해사 소유토지 1,700여평이 존재하며, 1960년대 김종조씨가 이장을 할 때 박정희대통령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다시 냉천2리의 중보를 찾았으나 보는 5년여 전 철거가 되었는데 그 위치는 교대리 129번지 옆이며, 이 보는 황정리 철교위에 만들어진 거여보(조선시대 축조)의 물이 황정, 관정, 신월을 거쳐 냉천리 마을 앞을 지나 중보를 거쳐 읍사무소 앞을 지나 덕성리까지 물이 이어졌다하니 금호지구의 풍락지(1932년 축조), 대미지, 부제와 함께 금호평야를 적시는 주요 관개시설이었으며, 길 건너 교대리에 위치한 금호읍사무소는 1962년 지어진 후 2006년에 그 자리에 다시 지어졌고 읍사무소 앞의 상권은 냉천2리 구역이 대부분이다.
중보 하류에 위치한 금호교에는 현수막 게시대가 설치되어 있고 10여m 아래에는 철도교각이 아직 남아있는데 초기 대구선 철도가 이 자리를 지났다는데 당시 역은 현 금호공설시장에 있었고 황정으로 가는 길을 따라 도동에 설치된 역(구 영천역)에서 경주로 향하였는데 지금은 폐역이 된 금호역과 봉정역은 당시엔 없었는데 노선이 이설되면서 생겼다 한다.
당시 금호시장은 우체국 동편에 닭전이라 하여 닭, 토끼 등 소가축 매매시장이 있었고 중간에는 여러 잡화들, 그리고 금호교회 서편이 우시장이었다 하며, 닭전은 1980년까지 존재하다 금호강 둔치로 옮겨져 운영되다 없어졌고, 1979년 당시 내무부에서 인구의 도시집중화 방지책으로 시행한 소도읍 가꾸기 사업으로 현재의 시가지 모습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대구선 철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구선은 1916년에 착공하여 1918년 대구에서 포항까지 109.1km 구간이 개통되어 초기에는 경동선이라 불리었으나 중앙선이 청량리역에서 경주역까지 구간이 1939~1942년까지 연차적으로 개통이 되면서 대구~영천구간만 대구선으로 남게 되었다.
초기 경동선은 762mm의 협궤철도였으나 안전성 문제와 물동량 증가 및 중앙선과 연계운송에 따라 1,435mm의 광궤철도로 교체함에 따라 현 금호시장에 역사를 두고 금호읍사무소 앞을 지나가던 철도노선이 현 위치로 이설되었으며 금호공설시장도 현 위치로 이전이 되고, 구 금호공설시장은 이재민반이라 불리는 빈민가였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으며. 냉천건널목이라 일컫는 금호건널목은 장항선 건널목사고(45명 사망) 여파로 1970년 차단기 설치와 관리인이 배치가 되었고 건널목관리도 철도청 경영개선책으로 민간이 관리하고 있었다.
※ 당시 경동선 협궤철도의 주요역은 대구-동촌-반야월-청천-하양-금호(현 금호공설시장 소재)-영천(도동 소재)-임포-아화-건천-광명-서악(울산방면 연결)-금장-사방-안강-부조-효자-포항-학산역이었다.
주요 풍습을 살펴보면 1960~70년대에 어린이들의 놀이로는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맛때), 못따먹기, 땅따먹기, 제기차기, 고무줄놀이, 줄넘기, 짤짤이(동전놀이) 등이 있었고 농악, 윷놀이, 줄당기기, 그네타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화전놀이 등과 여름철에는 홍수 때 강 헤엄쳐 건너기, 과일서리, 고기잡이를 하였다.
겨울에는 얼음지치기, 곰배로 고기잡기, 밥디리, 라면삶아먹기 등과 학교운동회 때 마을간 겨루기가 주요 행사였으나 지금은 어린이들은 컴퓨터 앞으로, 어른들은 경로당으로 가는 등으로 세월이 바뀌었고, 도로풀베기, 진입로, 농수로 정비 등의 마을공동 부역도 사라지고, 연2회 보리와 벼로 현물로 받던 이장 수곡도 현금으로 바뀌어 징수를 하고, 또 평균수명이 85세가 넘고 농촌에서는 이농현상으로 65세가 되어도 청년취급을 받고 있다.
냉천리는 행정구역으로 1, 2리로 구분이 되어 있으며 금호초등 동쪽 끝 진보1차아파트 들어가는 길이 경계라 하며, 주요 건물로는 1977년 설립된 냉천새마을금고가 있고, 냉천1리 409-10번지에 15층 69세대의 포산장미아파트는 1997년 준공되었고, 냉천2리 230-2번지 6층 규모 47세대의 진보맨션이 1991년 준공되었다.
1928년 개설한 금호교회는 냉천리 687-4번지에 2005년에 현대식으로 지어졌고, 금호성당은 1947년 공소로 출발하여 1963년 하양본당에서 분리되어 교대리 176-1번지에 위치하다 1992년 냉천리 251-6번지로 옮겨 새로 지었다.
냉천마을의 인물을 살펴보면 김상도(1918~1986)씨는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수료하고 1952년 경북도의원을 거쳐 자유당소속으로 1954년 제3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권태신(1949~)씨는 서울대 상대를 나와 제19회 행정고시를 거쳐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을 지냈다.
그의 부친 권성근(1926~)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조종사로 공군 소장으로 예편하였으며, 권실장의 백부 권춘근씨 또한 1952년 면의원, 1954년 금호면장, 1956년 경북도의원을 역임하였고, 박태현씨는 1956년에 구자화씨는 1960년에 금호면의원을 지냈고, 이영수씨는 1980년 대통령선거인단을 하였다.
2010년 금호읍 성천, 대미리 일원 200만 평방미터에 한국마사회에서 추진중인 영천경마공원의 유치환영과 대상지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이 널부러진 가운데, 구암리 일원에는 산업단지조성이 한창이고, 대구선복선화는 설계중이며, 금호강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한 생태하천조성사업이 한창이고, 금호공설시장 인근 소재지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시행하는 소도읍 가꾸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기록 : 금호읍 냉천리 거주 정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