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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평=본명:이응호(또는 이두희)(1904~1940)

이원석(문엄) 2011. 7. 6. 09:47

이력(履歷)

본명:이응호(또는 이두희)(1904~1940)

 

 

 

출생지: 영천시 성내동 

부친인 이권조에게(영천이씨) 한학을 배웠으며 배제 중학교를 다녔다.

필명은 왕평, 편월, 추야월이며 대표작은 "황성옛터""조선팔경""능수버들" 등이 있다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과 "황성옛터"는 동일 함]

 

---왕평 이응호 선생의 활동상--- 

폴리돌 레코드사의 문예부장 시절에 우리나라 대표격인 민요가수"선우일선, 

왕수복, 왕초선"등과 작곡가 "김용환"을 배출시켰다.


△대표적인 노래
·선우일선 : 능수버들, 대한팔경(조선팔경가) 
·왕수복 : 고도의 정한, 부두의 연가, 

연극 극본창작에도 조예가 깊어 "경성야화""코스모스 호텔" 등 조선연극사와 

연극사에서 극본을 썼으며,
특히, 당시 눈물의 여왕으로 불리우던 전옥과 출연한 "항구의 일야"는 인기가 좋았다.

대표곡인 "황성옛터"는 왕평이 지은 시에 전수린이 곡을 붙였으며 

가수인 이애리수가 불러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노래다.

그후 빅터레코드사 전속 가수가 된 이애리수는 민중의 노래인 황성옛터를

 1932년에 취입하여 5만장이나 팔렸다.
당시 축음기 1대를 보유하면 부자집이라 했으니 5만장의 sp판이 팔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니 할 수 없다.

 

***대표곡 "황성엣터"에 얽힌 비화***

 

당시 이애리수가 불러 공전의 빅 힛트를 한 황성옛터는 당시 일제의 핍박으로 

절망감에 빠져 있던 국민들의애환을 달래었을 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공연중 

관객들의 열광으로 인해 일경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반일, 항일적인 내용으로 국민을 선동한다는 명목으로 왕평선생을 

일경에 투옥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대구에서는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황성옛터 노래를 가르친 교사와

 교장선생님을 일경에 잡아 가두기도 한 사건이 있었다.

황성옛터가 실린 빅터 레코드판 (1932년)을 보면
KJ- 1169
victor kj - 1169 - A  고요한 장안
victoe kj - 1169 - B  황성의 적
으로 두곡을 취입했다.

1940년 4월경 "포리돌 실연단"을 조직하여 조선 북부 지방 순례의 길에 올랐으면,
7월 31일 평안북도 강계에서 신카나리아와 "남매"라는 극에 출연하다가 

무대 위에서 쓰러졌다.
향년 33세로 지병인 고혈압으로 숨졌다.
오케 레코드사에서는 고인의 추모하기 위하여 1943년 김해송 작곡, 조명암 작사,

 남인수 노래인 "오호라 왕평"을 발매하였다.


○ 왕평 선생의 활동 


   1921년 여배우 "복혜숙"과 함께 현철이 주관하는 배우학원에서
   동문 수학하였으며,
   눈물의 여왕 "전옥"을 있게한 "항구의 일야"(원작자)이며
   배우로써 "전옥"과 공연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가요 작사, 연극배우, 만담가로 활동 하였습니다
   1940. 7. 31년 평안북도 강계(江界)극장에서 "신카나리아"와
   연극 "남매" 공연중 작고하였으면. 병명으로는 몸이 뚱뚱한 관계  
   로 고혈압이 유력시 됩니다.
   부인 "나품심"은 만담가. 연극배우로 활동하였습니다

 

○폴로돌 레코드사
  사무실(지사)는 서울 충무로에 있었으며 초대 문예부장이 왕평
  선생님입니다.
  같이 활동한 가수로는 김용환, 왕수복, 선우일선이며 

가요와 민요로 출발하였습니다.
  이중 김용환은 제가 알기로는 가수 김정구의 형이며
  왕수복과 선우일선은 평양권번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수를 천시한 때라 초창기에는 권번 출신이나
  악극단 배우 (이애리수도 이곳에 속함) 출신이 많이 활동하였습니다.

○ 황성옛터 (황성의 跡)


  초기에는 1926년 영화 "아리랑" 주인공 나운규와 출연한 여배우
  선우일선이가 불렀으나
  후일에 왕평선생이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이애리수에게 "황성옛터"를 

취입 시켰습니다.

 

○ 전옥과 연기한 "항구의 일야" 주제곡.
   1933. 4. 20
    polydor 19062 (항구의 일야) 이응호 작. 왕평. 전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맨 오른쪽이 왕평.

 

황성의 跡 - 이애리수(32년)

 

왕평(편월) 작사, 전수린 작곡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러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심사를 가슴속 깊이 품고

이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大韓八景'
 금강산 일만이천 봉(峰)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아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후렴)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의 이 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에- 석굴암 아침 경(景)은 못보면 한이 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有情)하다.

에- 백두산 천지(天池)가엔 선녀의 꿈이 짙고,
압록강 여울에는 뗏목이 경(景)이로다.

에- 캠프의 赴戰고원 여름의 낙원이요,
평양은 금수강산 행복의 낙원이라.

                                                       왕평  작사

 

 

 

 

 

 

 

 

 

 

 

 

출처 : 愛日堂
글쓴이 : 溪巖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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