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문화원(원장 성영관)에서 27일 세종대왕자태실과 한개마을, 성산동고분군에 담긴 생명의 탄생과 삶, 죽음에 이르는 문화를 생(生)ㆍ활(活)ㆍ사(死)로 푼 2011 성주생명문화축제에 다녀왔다.
성주문화원의 초대를 받아 참가한 이날 일정은 한개마을에서부터 시작됐다. 2007년 12월 31일 중요민속자료 제255호로 지정된 한개마을은 성산이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100여 채의 전통가옥들이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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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댁 |
월봉정, 첨경재, 서륜재, 일관정, 여동서당 등 재실과 북비고택, 한주종택, 월곡댁, 교리댁 등이 경상북도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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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댁 곳간 |
홍연옥 경상북도문화관광해설사의 심오하고 해학 넘치는 설명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기며 마을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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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종택 연못 |
축제추진위의 배려로 월봉정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은 후 성밖숲 축제장으로 향했다. 행사 부스를 둘러본 후 지난 4월 22일 중건한 봉산재(鳳山齋)와 시비공원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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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밖숲 축제장 |
성주읍 경산리에 봉두산정에 자리 잡은 봉산재는 성주이씨 삼현소의 하나로 23억원을 들여 3,000여 평의 대지에 건평 60평과 시비공원을 조성했다.
시비공원에는 이조년의 ‘다정가’와 이직의 ‘오로가’,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노래비 등이 잘 정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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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재 |
영천을 출발할 때 시조창반의 강종원(성덕대 초대총장) 어르신이 “처외삼촌댁 복원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봉산재를 나오면서 인근에 있는 만산댁과 배리댁, 만공댁(길 건너편 가옥, 동네주민이 옮겨 복원했다고 함)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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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비공원 |
성주읍 예산리에 있는 이 특별한 가옥(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389호)은 성주향교 진입부의 큰길 건너편에 약 50m 들어가면 보이는 집으로 4동의 한옥군에서 2채가 2층이고 형제가 각각 지은 집이며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주군 기록에 따르면 이 가옥은 1938년에 건립했다고 하며 가옥의 건립자인 도문환은 성주 지역의 선각적인 유림으로 계몽운동에 앞장 선 만산(晩山) 도갑모(都甲模)의 아들로서, 그 자신 1920년대 성주지역의 청년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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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읍성 북문터 |
가옥의 배치는 서향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의 좌측면이 나타는데 사랑채 뒤에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의 안채를 배치해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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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산댁 |
건물의 바닥이나 창호 등에서 부분적으로 일본식의 요소가 들어 있기는 하나 조선인 건축주가 직접 설계하고 조선인 목수가 시공을 한 절충식 근대 한옥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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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씨댁 |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건립 주체가 된 2층 가옥이나 전통 한옥의 일부에 부분적으로 2층을 증축한 사례는 간혹 있긴 하나, 이 가옥은 설계 당초부터 2층으로 계획하였다는 점 등이 돋보이며, 한옥형태의 2층 가옥으로는 경상북도에서 유일한 사례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오후 3시로 예정된 생명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 세종대왕자태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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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공댁 |
이날 선포식으로 축제의 서막을 알렸고 다음날 태봉안 퍼레이드가 펼쳐지며 축제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영천문화원 가족들은 축제현장을 체험한 후 영천으로 돌아오면서 두 지역은 닮은 점과 비교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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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자태실 |
별고을(성주)과 스타영천, 별참미소와 별빛촌, 참외와 포도ㆍ복숭아, 한개마을과 선원마을, 회연서원과 임고서원, 성밖숲과 오리장림, 성산동고분군과 완산동고분군, 세종대왕자태실과 인종대왕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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