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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은행, 포도즙에 담긴 할머니의 소중한 마음

이원석(문엄) 2010. 12. 24. 10:39

이원석 편집위원 ycn24@hanmail.net

 

   
▲ 이원석 편집위원
새벽에 퇴근해 집에 들어가니 꼼꼼하게 포장한 상자가 택배로 와있었다. 그저께 택배회사 기사가 전화를 해와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했는데 최정순(82) 할머니가 보내온 것이다. 위에 참기름과 은행을 얹었고 밑쪽에는 포도즙이 꼭꼭 눌린 채 채워져 있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별로 해드린 것도 없는데 매번 정을 내시더니만…. 수시로 전화를 하시고 금호읍 신대리에서 문화원까지 나오시려면 교통편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과일이며 옥수수며, 고구마를 삶아 오시기도 하고, 떡을 만들어 오시기도 하고, 기념으로 만든 수건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신다.

최정순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영천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11월의 어느 날 영천시립도서관에서 시 낭송회를 하던 날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는데 할머니 여러분이 행사장을 착각하셔서 문화원으로 오셨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전해준 꽃다발과 화분을 잔뜩 가지고 내리셔서 내차로 시립도서관으로 모셔드렸다.

   
▲ 최정순 할머니

작은 친절이 고마우셨던지 이때부터 자주 문화원에 놀러 오신다. 혹 행사장에서 만나면 내 손을 꼭 잡고 반가움을 표시했고 지난 11월에는 2년간 모은 돼지저금통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주고 가셔서 영천시장학회에 대신 전달하기도 했다.

영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관중이 너무 없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나를 보고 “국장님! 내가 금호에서 친구들 많이 데리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는 앞쪽에 앉아서 열심히 박수를 쳐주시곤 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할머니께 감사의 전화를 드렸다. 조그마한 성의니 부담스러워 하지 말라시며 요즘 할머니 몸이 안 좋다고 하셨다. “위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야되는데 살게 되면 문화원에 놀러오겠다”고 하셔서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건강을 되찾으실 겁니다.”라며 힘을 실어드렸다.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폐지를 모아 불우이웃을 도우며 글쓰기를 즐겨하고 서예를 배우면서 여생을 보람 있게 보내고 계신 최정순 할머니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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