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적지 현장체험으로 선진지방문화 리더 자질 함양
<첫째 날> 새벽기차타고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출발
오랫동안 기다리던 여행이다. 인천국제공항에 18일 오전 9시 30분까지 도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할 수 있고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선택은 18일 01시 2분 영천 발 청량리 행 열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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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중엽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그리스 신전 양식의 전승비인 글로리에테(Gloriete) |
대구와 서울에 사는 친구가 먼저 올라온 후 시간 맞춰서 공항으로 가라며 권유했지만 나로 인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아내의 일정고려와 특히 17일 저녁 8시30분에 열린 한국-아르헨티나전 축구가 열린 터라 경기중간에 옮겨 다니기가 싫었다.
한국이 비록 4-1로 패하긴 했지만 그리스가 나이지리아에 2-1로 역전승을 거둬 그나마 우리나라에 조금 유리해진 것을 위안 삼으면서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영천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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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 크롬로프 성에서의 필자 |
영천역에서 두 번째 타보는 청량리행 새벽열차. 2년 전 겨울에 이용했을 때는 승객이 별로 없었으나 이날은 제법 많았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대로 5시간 여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도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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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국제공항 로비에서 경상북도 문화원 사무국장들이 모였다. |
근 12시간 가까운 비행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몸을 좀 피곤하게 만들어야 그나마 좀 지루할 것 같다는 계산을 해두었기에 억지로 잠을 청할 생각은 없었다. 청량리역에는 정확히 5시간 후인 06시 2분에 도착했다. 역 광장으로 나오니 인천공항 행 리무진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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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국제공항 청사 |
인천공항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30분, 7시40분에 도착하니 일행들과의 만남까지는 1시간 50분이 남아있었다. 우선 밤새 허전한 속을 풀어주기 위해 4층 식당가로 올라갔다. 육개장으로 속을 채운 후 로비에서 노트북을 꺼내 검색하니 무선랜이 잘 잡혔다. ‘참 신기한 세상이네!’ 이런 정도 환경이면 공항에서도 어느 정도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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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나항공 기내 |
함께 여행할 경상북도 문화원 사무국장 20명 반가운 인사를 나눴고 일행들과 출국장으로 들어가 면세점에서 아이쇼핑을 한 뒤 12시경 출국수속을 마치고 인천향발 프랑크푸르트행 아시아나항공 OZ541기에 탑승했다. 한국과 독일은 7시간의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18년 만에 꺼내 차고 온 결혼예물시계를 7시간 앞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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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간 숙박했던 독일 뉘른베르크의 호텔 |
친절한 승무원들이 각별한 신경을 써주는 가운데 여객기는 고도에 올라 900㎞의 속도로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날아갔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는가하면 공상에도 잠겼으며 여러 차례 짧은 수면을 취했더니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이 오후 5시였다. ‘한국은 아마 자정이겠지?’늦은 시간이지만 아내에게 무사도착을 알려야겠기에 핸드폰을 켜니 자동로밍이 되었다. <음성발신 한국 1900원/분, 수신 348원/분, SMS발신 200원, 수신 무료(데이터 12원/0.5kb)>라는 안내문이 떴다. 생각보다 요금이 싼 것 같았다.
문자로 무사도착을 알리니 아내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많은 것 보고 느끼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두 아들 동열, 동진이와 함께 기원하겠다.’고 했다. 내 삶의 출발은 언제나 가족부터니까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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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유럽의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대부분 50센트 정도 사용료를 받는다. |
환상적인 로만티크 가도, 동화 같은 메르헨 가도, 맥주의 도시 뮌헨 등 독일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나름대로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곳곳에 중세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성과 거리가 있어 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독일을 찾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발전을 조화시키며 유럽의 핵심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나라 독일. 분열과 통합의 쳇바퀴 도는 지난날의 아픈 상처는 통일 독일로 열매를 맺고 이제는 두 팔을 한껏 벌려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미리 대기해있던 체코 메르체데스 벤츠 버스로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3시간 정도 달려서 인구 50만인 바이에른주 제2의 도시 뉘른베르크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둘째 날> 잘츠부르크, 잘츠캄머굿 볼프강 호수마을
7시간 앞으로 당겨진 탓에 뭔가 개운치 않은 듯했지만 새벽에 일어나 한방을 사용한 김천문화원 송기동 국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뷔페식으로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일단 배를 채울 생각으로 고기위주로 음식을 덜어 와서 먹다보니 짜고 느끼했다.
조식을 먹은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이동했다. 312㎞, 이동시간은 3시간30분이 걸렸다. 오스트리아로 들어오니 핸드폰 로밍요금이 <음성발신 한국 1790원/분, 현지 880원/분, 수신 660원/분, SMS발신 300원, 수신 무료(데이터 12원/0.5kb)>로 바뀌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탄생시킨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일 년 내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알프스의 숲들과 함께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도시 곳곳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중세의 건물들에서 한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밖에도 등상과 스키 등의 스포츠, 감미로운 와인과 비엔나커피 등 다양한 즐길 거리들이 있어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나라이다.
모차르트의 탄생지인 잘츠부르크는 비엔나에서 서쪽으로 약300㎞ 떨어진 인구 14만의 도시로 ‘소금의 성’이라는 이름답게 소금무역을 통해 영화를 누렸던 역사의 흔적이 시가지 곳곳에 잘 보존되어 알프스의 대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잘츠부르크 음악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이날 잘츠부르크 관광에는 오스트리아 현지가이드 1명이 동행했다.
◉ 미라벨 정원(Mirabellgraten)
1960년 에를라흐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많은 조각상들과 분수, 꽃들이 어우러져 이름처럼 아름다운 정원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어린이들과 함께 ‘도레미 송’을 불렀던 무대로 유명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호헨잘츠부르크 성은 황홀할 정도이다.
17세기 초 디트리히 대주교가 세운 미라벨 궁전(Schlob Mirabell)에는 모차르트가 대주교를 위해 연주했던 대리삭 홀(Marmorsaal)이 있다. 지금은 실내악 콘서트 홀로 쓰이고 있다.
◉ 레지던츠(Resid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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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츠 광장 |
구시가의 중심광장인 레지던츠 광장 중앙에는 1656-1661년에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분수가 서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레지던츠이다. 레지던츠는 역대 대주교들의 궁전으로 17세기 초에 완성되었다 내부에는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홀(Rittersaal)을 비롯해 황제의 방 등 180개의 호화로운 방이 있고 레지던츠 갤러리에는 렘브란트, 루벤스 등 16-19세기 회화 약 20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 대성당(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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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처음 시작된 돔 광장에는 1771년에 제작된 마리아 상이 서있고 그 뒤로 웅장한 규모의 대성당이 있다. 744년에 창건된 성당은 1181-1200년에 걸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1958년의 대화재 이후 재건되었다. 내부는 대리석과 회화로 장식되어 있고 6000개의 파이프로 된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다. 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대성당의 보물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 호헨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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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헨잘츠부르크 성 |
묀히스베르크 언덕 위에 우뚝 서있는 잘츠부르크의 상징. 1077년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1681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으며 온전히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중부 유럽 최대의 성이다. 성 내부에는 대주교의 거실이었던 ‘황금의 방’, 무기와 고문기구 등이 전시된 성채박물관(Carolino Augsteum), 1502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옥외 오르간 ‘잘츠부르크의 황소’ 등이 있다. 또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 시내 전경이 일품이다.
◉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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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트라이데 거리 |
슈타츠교(Staats Brcuke)를 지나 동서로 뻗은 게트라이데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잘츠부르크의 중심가로 활기가 넘치며 각 상점마다 독특하게 만들어 놓은 철제간판이 인상적이다. 거리에는 유면 상점들과 저렴한 레스토랑이 즐비하며, 15세기에 건축된 구시청사와 모차르트의 생가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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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 생가 |
인천공항에서 돌아올 때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 한 송경화 투어 컨덕트(TG)의 안내로 잘츠부르크 관광을 마친 후 잘츠캄머굿으로 이동했다.
◉ 잘츠캄머굿(Salzkammergut)
독일어로 잘츠캄머굿(Salzkammergut)은 ‘황제의 소금 보물창고 지역’이란 뜻이라고 한다. 잘츠(Salz)는 소금을 뜻하며 캄머(Kammer)는 황제 또는 국가의 보물 창고를, Gut(굿)은 소유자란 뜻으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소금생산지라서 부유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잘츠캄머굿은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형성된 76개의 호수와 산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30km 떨어진 잘츠캄머굿에서 작은 마을인 장크트 길겐. 많은 호수들 중 알프스 북쪽의 볼프강(wolfgang) 호수에 있는 장크트 길겐(St. Gilgen) 마을은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지난 1965년에 제작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으로도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아름다운 알프스의 대자연과 조화를 이룬 잘츠캄머굿에는 2000m의 높은 산들 사이로 이런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으며 이 볼프강 호수는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여름 휴양지였다고 한다. 이곳은 옛날 모차르트의 할아버지가 시장과 판사 생활을 했던 곳이며 모차르트 어머니(1720년 생)의 고향이기도 해서 모차르트의 성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고 불리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다본 장크트 볼프강 호숫가엔 멋진 바와 레스토랑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레스토랑에는 이날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와 침구들이 피로연을 하는지 아주 멋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셋째 날>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생각하며 비엔나로
갈 길이 멀어 조금 이른 아침식사를 한 뒤 3시간 30분여 걸려 300㎞ 남짓한 비엔나로 이동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예쁜 집들과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보며 어릴 적 동경했던 ‘알프스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비엔나(Vienna)는 도나우 강 상류 우안에 있는 유럽의 고도(古都)로, 지금도 중부 유럽에서 경제ㆍ문화ㆍ교통의 중심지를 이룬다. 수백 년 동안 대제국의 수도였으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정치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중부유럽을 동서 방향으로 달리면서 민족ㆍ기후ㆍ식생 등의 경계를 이루는 알프스ㆍ카르파티아 산맥을 관류하고 있는 도나우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현지가이드 김정원씨의 안내를 받아 쉔부른 궁전 및 정원, 오페라하우스, 국회의사당, 구시가, 성슈테판성당, 네오고딕양식의 화려한 비엔나 시청사 등을 견학했다. 비엔나 시청사에서는 비엔나 문화국에서 주관하는 110년 전통의 시민대학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회장은 대통령이 주로 맡았으나 지금은 국회의장이 맡고 있으며 전국에 270개 정도가 개설되어 있다고 했다.
시민대학에서 공부한 아마추어 예술가들에게 평소 연마한 기량을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에서도 많은 협조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 쉔부른 궁전(Schlob Schobruon)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 하나인 쉔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에 필적할만한 장대하고 화려한 규모를 자랑한다.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도중 ‘아름다운 샘(Schonner Brunnen)’을 발견한데서 유래하여 쉔부른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쉔부른 궁전은 프랑스 혁명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뜨와네뜨 어머니의 궁전으로 마리 앙뜨와네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인 반듯반듯한 인위적인 조경을 하고 있다. 정원은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1569년 만들어졌으며 건물은 1700년에 완공된 것을 1744-1749년 증축하였다. 궁전 내부는 우아하고 호화로운 로코코식으로, 18세기 후반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자기, 칠기, 가구, 회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모차르트가 6세에 연주하면서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구혼했다고 전해지는 ‘거울의 방(Spiegelsaal)’과 마리아 테레지아가 만찬실로 사용했다는 ‘중국식 작은 방 (Chinesisches Rundkabinett)’, 이밖에 궁전 안에는 극장, 예배당을 비롯하여 무려 2천여 개의 방이 있으나, 일반에게는 40개 내외만 공개되고 있다.
◉ 비엔나 시청사(Rathaus)
1883년 완성된 신고딕식 건물로서 빈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구시가의 옛 시청사를 대신해 1883년에 세운 네오 고딕양식의 멋진 건물이다. 힘차게 솟아오른 높이 100m의 탑이 인상적이며 꼭대기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든 기사상이 세워져 있다. 건물 밖의 4면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트리아 저명인사의 동상이 서있다. 벽에 장식되어 있는 조각상도 매우 정교하며,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과 비슷한 규모에 건축물이다. 건물은 권위적이지만, 빈의 시민에게는 더 없이 친숙하다는 시청사 건물이다.
◉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그리스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본떠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전의 성스러운 분위기가 흐른다. 그리스 신전양식을 모델로 1883 년에 건립 되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국이 사라진 뒤 지금까지 오스트리아 의회의 본거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앞에 있는 아테네브룬넨(Athenebrunnen) 분수는 1902년 카를 쿤트만이 디자인 한 것으로, 분수 한가운데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우뚝 서있다.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이 밝혀진다.
◉ 오페라하우스
클래식 음악의 메카로 예술음악제, 대무도화 등 큰 행사가 수시로 개최된다. 총 1,642석의 객석을 보유한 오페라 하우스는 1869년 5월 15일 모차르트의 돈조바니 공연을 시작으로 역사의 페이지를 펼친다. 1945년 2차세계대전 당시 전소되어 재정 확보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청보다 먼저 재 건립되었다. 그 후 1955년에 베토벤의 피델로 공연을 시작으로 재개장되었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는 구스타브 말러를 비롯해 우리나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스승 리하드 슈트라우스, 바움가르트너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총감독을 거쳤다.
<넷째 날> 체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체스키 크롬로프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 크롬로프로 이동했다. 거리는 222㎞로 3시간3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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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동감 넘치는 체코의 젊은이들 |
체코는 1968년 프라하의 봄, 벨벳 혁명으로 불리는 1989년 민주화운동을 거챠 공산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한 민족성이 강한 나라다. 보헤미아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여 화려한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체코는 서부 보헤미아와 동부 모라비아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성이 점점이 흩어진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등의 체코 민족주의 음악이 꽃핀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인구는 약 1046만 명, 면적은 우리나라의 1/3인 7만 8864㎢, 언어는 체코어, 화폐는 아직까지 코루나를 사용하고 있다.
체코에서의 핸드폰 로밍요금은 <음성발신 한국 3700원/분, 현지 780원/분, 수신 600원/분, SMS발신 200원, 수신은 무료(데이터 0.5원/0.5kb)>이다.
◉ 체스키 크롬로프
체코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도시인 체스키 크롬로프는 인구 약 1만5천명의 작은 도시로 한국인의 관광코스에 포함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라고 했다.
13세기의 한 지주가 이곳에 성을 건설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도 시작됐는데 7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중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붉은 기와지붕의 중세적인 건물들과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고딕양식의 성, 바로크와 르네상스 등 중세의 미술양식이 섞인 정원들 등 이 그것이다.
이 도시가 가장 번성했던 때는 14-17세기 초까지이며 그 후 18세기에 슈바르젠베르크(Schwarzenberg)의 소유를 마지막으로 공산정권하에 속하게 된다. 성 아래로 구시가지가 발달해 있는데 이 도시의 중심으로 각종 상점과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까지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1992년 프라하, 성 요한 네포묵 순례교회, 쿠트나 호라, 호란 비체 등과 함께 보헤미아 땅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성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로 3시간 걸려 180㎞ 떨어진 프라하로 이동했다. 현지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인형극을 관람하고 야경을 감상했다.
◉ 체코 인형극 돈 조반니(Don Giova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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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인형극 공연 |
선택 관광으로 모차르트 오페라의 최고 걸작인 돈 조반니를 관람했다. 심각한 대작일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현대 인형극이다. 극장도 아담하고 시설도 부담 없이 단원 몇 명이서 공연을 해내는데 공연 내내 폭소가 끊이지 않는다. 돈 많고 잘생긴 호색가인 돈 환이 유부녀 등 가리지 않고 여자를 유혹하며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으로 원래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것을 인형극으로 각색했다.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하고 호텔에 가서 투숙했다.
<다섯째 날> 프라하성, 까를교, 바출라프 광장 … ‘프라하의 봄’
한국 대 나이지리아간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23일 새벽 3시30분이지만 체코에서는 22일 밤 8시30분에 시작되므로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일정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블타바 강에 걸쳐진 유서 깊은 다리 까를교와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틴교회, 체코의 건국자 성이 있는 바출라프 광장, 아름다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프라하성 등을 관광했다.
◉ 프라하성
프라하성은 길이 570m, 폭 평균 128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프라하성은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 맞은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聖)비투스 대성당, 성조지바실리카, 성십자가 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 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라하뿐 아니라 체코ㆍ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며, 특히 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까를교(Karluv Most)
블타바 강에 걸쳐져 있는 가장 유서 깊은 다리로 전체길이는 약 520m. 1353년부터 150년 이상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기저기 각도가 휘어져 보인다. 다리의 양쪽에 15개씩 늘어서있는 체코 성인의 조각, 다리 동쪽 입구에 있는 탑에 오르면 프라하 성과 구시가, 블타바 강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 구 시청사(Stromestska Radnice)
1338년 건조된 프라하 시 행정의 중심지이다. 중세의 번영을 연상시키는 대형 홀이 있고 70m의 탑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 시내 경관은 장관이다. 특히 외벽에 있는 1410년 작품인 시계탑과 매시 정각마다 시계위의 창문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열두 제자, 암탉의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 밑에 있는 2개의 시계는 천체의 회전과 사계의 이동 변화를 나타낸다. 시계탑 옆 건물 1층에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이곳에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 바출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
광장이라기보다는 가늘고 긴 대로로, 중앙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으며 대로 양쪽에는 호텔과 레스토랑, 은행, 백화점 등이 늘어서 있다. 광장 끝의 국립박물관 앞에 있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 성 바출라프의 동상이 볼거리. 1989년 민주개혁 때 여기서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광장 한켠에 ‘프라하의 봄’과 스탈린기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 바른도프 문화보육원 견학
프라하 시내에 있는 바른도프 문화보육원(원장 빠뜨라엘 레노바)을 방문했다. 프라하 통역가이드 김태조씨가 사전에 약속을 해놓았기에 빠뜨리엘 원장이 미리 나와서 마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집과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교사 이외에도 10여명의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감사의 표시로 협의회에서 미리 준비해간 합죽선과 아이들의 선물을 전달했다.
마지막 날 일정을 위해 프라하를 떠나 독일 뉘른베르크로 이동해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월드컵 축구중계를 보기 위해 호텔로 달려갔다.
◉ 독일 뉘른베크르에서의 ‘대~한민국’

23일 새벽 3시30분(독일 현지시간 22일 저녁 8시30분) 열린 남아공월드컵 한국 대 나이지리아에서 박주영 선수가 역전골을 터트린 순간 독일 바이에른주 제2의 도시인 뉘른베르크의 한 호텔에서도 함성이 터졌다.
해외연수차 독일에 있던 2010년 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북도지회 소속 사무국장들은 마음이 급했다.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서둘러 일정을 마무리하고 호텔에 들어와 TV를 트니 아르헨티나-그리스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함께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갔지만 TV시설이 없었고 독일 방송사에서는 같은 시간에 벌어진 경기 중 비중이 높다고 생각했는지 아르헨티나 전만 중계했던 것이다.
카운터 직원에게 문의하니 객실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50유로 90센트를 지불하면 유료채널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동료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면서 먼 이국땅에서 한국팀이 16강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목청껏 한국팀을 응원했고 다행히 결과까지 좋아 경기 후에는 축하주를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는 호텔에 투숙한 독일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삼성, LG, 현대, 기아 등 대기업들의 광고판이 유럽 곳곳에 붙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위상이 새삼 느껴졌다. 우리민족은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나도 저력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의 삶을 살아야겠다.
<여섯째 날> 로텐베르그, 프랑크루르트 관광 후 공항으로
실질적인 유럽 연수 마지막 날이다. 유네스코 유산도시인 로텐베르그를 관광한 후 181㎞ 떨어진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해 뢰머 광장과 구 시청사를 견학했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을 타기 위해서 4시 30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 로텐베르그
‘빨간 도시’라는 뜻으로 중세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불리는 로텐베르그는 로만티크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정식명칭은 ‘타우버 강 위의 로텐베르그’이다.
세 차례에 걸쳐 축조된 강건한 성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관광명소도 그 안에 모두 밀집되어 있다. 남쪽의 타우버 리비에라(Tauber Riviera)의 산책로에서는 아름다운 타우버 계곡을 조망할 수 있다. 시내관광은 걷거나 마차투어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로텐베르그는 아주 작은 마을로 걸어서 2-3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과 구 시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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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뢰머 광장 |
‘로마인 광장’이란 뜻의 뢰머 광장(Roemerplatz)은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영향이 남아 있는 이름이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자 명소이다. 현지인들에겐 만남의 장소 같은 곳이다.
그래서 뢰머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광장의 중심에는 정의의 여신상(유스티티아, Justitia)과 분수대가 있고, 그 주변을 고풍스런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유스티티아 여신상은 왼손에는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을, 오른손에는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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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구 시청사 |
분수대 주변은 중세 목조건물이 에워싸고 있는데, 이 중에는 구 시청사도 있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구 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건물 안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진열돼 있다고 한다.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미영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1980년경에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광장 뒤편에는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다는 높은 첨탑의 성바돌레메 대성당이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교회였기 때문에 ‘카이저돔(황제의 대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한 후, 뢰머 광장에서 축하연을 하였다고 한다. 13-15세기에 걸쳐서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높이 95m의 탑은 1415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877년에 완성되었다.
다소 빡빡한 관광 일정 탓에 제때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별 무리 없이 출국수속을 밝고 OZ542기에 탑승했다. 시차 때문에 프랑크푸르트로 올 때 벌었던 시간을 되돌려주기 위해 시계바늘을 7시간 앞으로 돌렸다.
<일곱째 날> 귀국 … 육개장이 먹고싶은 난 한국사람
12시간여의 비행동안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기내로 들어가면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신문 10여부를 챙겼다. 독일로 올 때 갖고 온 것으로 며칠 지난 내용이었지만 그런대로 유용한 내용들이 많아 꼼꼼하게 읽으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갔다.
항공기가 인천공항으로 접근해오면서 안도와 반가움이 밀려왔고 억지로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유럽음식의 느끼함 대신 육개장과 자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늦은 기내식 탓에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옥천휴게소에서 다른 사무국장들이 미리 시켜놓은 라면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난 역시 한국에 맞는 체질인가보다.
동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저녁에 영천에 도착하니 갑자기 여행의 피로가 몰려왔다. 하루 쉬어주면 피로가 좀 풀릴 것 같기는 했지만 밀린 일과 영천문화원 가족들 생각에 내일 아침에 출근하기로 했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지방문화가 지역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의 세기를 맞이하여 향토문화발전을 목표로 지역문화산업을 최일선에서 수행하고 있는 문화원 사무국장들에게 다양한 세계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제공을 통해 문화적 식견을 높여주고 유럽선진지 문화프로그램 및 문화시설 견학으로 우수운영사례에 대한벤치마킹을 추진하여 문화행정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지작시키기 위해 열린 것이다.
다양한 부류의 경상북도 20개 문화원 사무국장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고 많은 정보를 얻었으며 내가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마인드를 배웠다. 또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의 옛 영화를 상징하는 도시와 문화적 토양을 몸소 체험하면서 우리도 문화강국이 되기 위한 노력이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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