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오피니언·칼럼
“친구야! 주간지 1년만 구독해줘”
이원석(문엄)
2010. 6. 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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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편집위원 ycn24@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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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석 편집위원 |
“원석아 오랜만이다. 나 정희야, 이정희!”
어느 날 오후에 한 여자에게서 핸드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지역번호를 보니 032, 인천이었다. 기억은 없지만 상대가 나를 알고 있는데 모른다면 속상해 할까봐 나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10여 분 간 통화했다.
영천에 사는 다른 친구들과 통화를 하다가 내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어릴 적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저것 근황을 묻더니 용인에서 살다가 얼마 전 인천으로 이사했는데 인쇄소를 하고 있다며 명함이나 전단지만 만들어서는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거래처 홍보를 도와줘야 된다고 했다.
거래처 정보를 알아주는 일정도야 당연히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보물 받을 주소를 불러달라고 해서 사무실 주소를 불러줬더니 ‘시사in’이라고 들어보았냐고 했다.
들어보았다고 했더니 염치없지만 월 구독료가 14,000원 정도라며 1년만 구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친구가 부탁하는데 그 정도 못 도와주겠느냐는 생각에 그러면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너무 고맙다며 나중에 고향에 내려오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옆에 있던 동료들이 사기전화라며 막 웃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 5명에게 전화했더니 이런 전화를 받은 친구는 없었으며 3명은 이정희란 아이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2명은 그런 애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좀 전에 받은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았다. 조금 후에 ‘시사in' 발송부라며 인천지역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직원에게 나를 아는 척해서 친구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일단 취소시켜달라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통 표준말을 구사하는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로 ‘어릴 적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나를 기억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 잘 못하고 착하지 않은 아이가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도 만약 진짜 동창이라면 “오죽 힘들었으면 자신을 기억도 못하는 남자동창에게 자존심 상해가면서 전화했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동문사칭 주간지 구독’을 검색했더니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개인정보 유출이 심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막상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문명의 이기 속에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아서 씁쓰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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