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10. 1. 25. 10:09

장병훈 편집위원 siijang@hanmail.net

                                                                                                                      서영식(1973~ )  

 

  부고를 받고 급히 역으로 갔습니다 남은 자리는 역방향 뿐이라 하였습니다 역으로 가는 방향이라니, 나도 이 역에서 그 역으로 가는 길이라 선뜻 얹혀가겠다 하였습니다 역으로 가는 자리에 얹혀가는 몸이라 자릿값도 헐었습니다 얹혀간다는 건 스스로 방향을 가늠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서 나는 그많은 역들과 풍경들을 등으로 밀고 갔습니다 얹혀가는 그 방향에는 또 스치고 마는 풍경이란 없어서 보이던 것들이 휙 하고 사라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되려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씩 나타나 멀리서 산이 되고 있었습니다 얹혀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보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잊혀지는 그 방향을 순방향이라 불러도 될 일인가 하면서, 의자 하나 거꾸로 놓고 앉아 나를 휙 스치고 떠난 사람을 나는, 역逆으로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과거(겨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미래(꽃)가 될 수 없어!

 

역방향으로 몸을 한 번 세워 봐! 부끄러운 그대 얼굴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지. 한 번 씩 거꾸로 매달려 인생을 한 번 역방향으로 돌이켜 봐. 피가 역류하면서 잠시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이내 고요하게 자기 얼굴을 쳐다 볼 기회를 만날 거야.
기차를 타러 역(驛)에 가서, 역(逆)방향으로 한 번 앉아볼까? 휙~휙 ‘순식간에 사라지고 잊혀지는’ 순방향만 고집할 것은 아니겠지. 역(逆)방향으로 돌아 앉아 제대로 한 번, 세상 풍경 바라보는 거야.

 

   
▲ 시인 장병훈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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