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뉴스24/답사와 여행이야기(이원석 편집위원)

보성~강진~해남~보길도~완도 ‘1박2일’

이원석(문엄) 2009. 7. 21. 22:25

보성~강진~해남~보길도~완도 ‘1박2일’ 
여름 한가운데 문화유산 찾아 떠난 남도 여행
이원석 기자 ycnews24@hanmail.net

엄청난 폭우가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이 턱턱 막힐 듯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 날씨가 심하게 요동쳤다.

   
▲ 보성녹차밭

고산 윤선도의 인생과 학문, 그리고 삶의 여유가 묻어있는 해남과 보길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출발 하루 전에 뉴스에이 총괄본부 손삼규 사장으로부터 어떻게든 지나가는 길에 보성에 꼭 들러달라는 전화가 왔다. 다소 먼 일정이라 빠르게 이동하려고 했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 분수광장

17일 아침 7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대구-포항 고속도로와 경부ㆍ구마ㆍ남해고속도로를 옮겨 다닌 후 광양에서 국도로 갈아탔다. 오전 11시30분경 보성공설운동장 앞에 도착하니 손 사장과 전남인터넷신문 ㆍ펜소리뉴스 김승룡 대표가 반갑게 맞아줬다.

   
▲ 다산초당

인근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 후 보성 대한다원으로 갔다. 어느 계절에 가도 마음을 푸르게 해 준다는 대한다원은 장영섭 회장이 1957년 설립했다. 그 후에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대단위 차밭을 조성하고 삼나무, 편백나무, 주목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 약 300여만 그루의 관상수와 방풍림을 식재해 주변 풍광을 아름답게 조성했다.

   
▲ 다산영정

이곳은 영화 ‘선물’, ‘목포는 항구다’, CF SK텔레콤 ‘수녀와 비구니’편, 드라마 ‘여름향기’, ‘하노이의 신부’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동암

비가 오는 날씨 속에도 연인, 가족과 물론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람객들도 많이 찾았다. 모터보트를 예약해뒀다며 좀 더 있다가 떠나라는 손 사장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강진으로 이동했다.

   

 ▲ 정석

 

   
▲ 연지석가산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자리잡은 ‘실학사상의 산실’인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18년의 유배생활 중 10여 년 간의 안식처가 된 곳으로 ‘목민심서’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던 곳이다.

 

   
▲ 천일각

 

큰길을 지나 귤동마을로 들어서 10분정도 산속 오솔길을 걷다보면 92개의 돌계단을 오르게 되고 계단의 마지막에서 다산초당을 만나게 된다.

   
▲ 다산기념관

오솔길 초입에서부터 다산의 모습을 말해주듯 적송(赤松)과 하늘을 찌를 듯한 대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또한 다산에게 세상을 거꾸로 보기를 가르쳐줬던 민초들의 넋이 살아있는 듯 제멋대로 뒤틀린 고목이며 거칠게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나무숲길을 걷게 된다.

 
   
▲ 녹우당
 

 

초당이 기와집이어서 의외였는데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허물어진 초가를 대신해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동암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천일각은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정약전을 그리며 심회를 달래던 곳으로 정면과 측면이 한 칸씩인 누각으로 날씨가 좋으면 멀리 완도쪽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인근에 있는 다산기념관을 둘러본 후 땅끝 해남으로 향했다.

   

 

해남경찰서 앞에서 5~6년전 영천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영천향토사연구회와 인연이 된 이 지역 향토사학가 전명현씨를 만나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중 하나라고 하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인 녹우당을 방문했다.

   

 

본채에서 고산의 14대 종손인 윤형식씨와 소담을 나눈 후 우리나라 대표적인 종가이자 전통고가로 잘 알려진 고택을 둘러봤다.

   

 

녹우당 앞에는 5백년된 은행나무가 이 집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듯 찾는 이를 압도한다. 현재 녹우당의 영역 속에 있는 주 건물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 등이 있다.

   

 

연자방아가 놓여있는 유물전시관을 들어서면 국보 제240호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이 담긴 고산의 수적관계문서와 노비문권 등 고산과 윤씨 후손들이 남긴 유물 2,500여점이 보관되고 있다.

   
▲ 두륜산대흥사

녹우당에서 나와 전씨에게 해남의 명소 중 한곳만 더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대흥사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항리 공룡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 대흥사 부도탑

우항리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척추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전파시킨 지역으로 우항리를 소개할 때에는 ‘세계최초’ ‘세계최고’ ‘세계최대’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화석지다.

   
▲ 유선관

해남 황산면 우항리 해안가에 9천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새발자국, 나무줄기화석, 공룡발자국 등이 남아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우항리의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은 세계 최초로 알려진 미국 에오새 지방의 신생대 지층보다 무려 4천만년 정도 앞선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해안선 곳곳에서 사발 크기만 한 공룡의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공룡화석전시관 뿐만 아니라, 공룡박물관과 함께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 대흥사 대웅보전

우항리 일대는 금호방조제가 건설되기 전만 해도 화원반도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바닷가였으나, 방조제의 완공으로 인해 담수호인 금호호가 들어서자 다시 수천만년 만에 호숫가로 바뀌었다.

   

 

호숫가에 위치한 황산면 병온마을과 내산마을 사이에 높이 3~4m의 해식 절벽이 5km가량 이어져 있다. 이 해식절벽이 바로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층이다. 이곳의 퇴적암층은 주로 이판암(泥板岩)과 사암(砂岩)으로 이뤄져 있다. 사암층에는 퇴적 작용이 활발했을 당시에 강한 바람이 불어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연흔(물결의 흔적)이 아주 또렷이 남아있다.

   
▲ 원교 이광사가 쓴 천불전 현판

민선 1기 때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해남 공룡화석지는 지금까지 5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지만 앞으로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정도로 제대로 된 공원을 만들기 위해 규모나 내실을 충실히 다지고 있었다.

   
▲ 대흥사 연리근(사랑나무)

아침 일찍 대흥사를 구경하기 위해서 숙소는 대흥사와 가까운 해남유스호스텔로 잡았다.

   
▲ 해남유스호스텔

전날의 피곤함을 잊은 채 새벽 6시에 천년고찰 두륜산 대흥사를 찾았다.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전했다고 전해지며 경내에는 대웅보전, 침계루, 명부전, 천불전, 일지암, 북미륵암 등이 있다.

   
▲ 해남 땅끝마을

많은 전각과 암자가 들어선 대흥사의 유물유적 가운데 진수는 천개의 불상을 모신 천불전이다.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옥으로 만들어진 신비스러운 천불상이다.

   
▲ 해남-노화도간 여객선

천불전 현판 글씨는 조선 중ㆍ후기에 추사 김정희보다 독창적인 글씨를 조선 만방에 날렸지만 철저히 고립됐던 원교 이광사의 것으로 그는 우리 민족문화 예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명필이었다.

   
▲ 노화도

석탑으로는 대흥사 응진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북미륵암 동탑, 만일암지 오층탑 등이 있으며 또한 56기의 부도가 있다.

   

 

대흥사 입구에는 100년이 넘은 여관으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강호동의 1박2일에 나오면서 더욱 유명해진 유선관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 보길대교

가까운 곳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땅끝마을로 차를 몰았다. 선착장에서 노화도 산양항으로 출발하는 배표를 끊었다. 30여분만에 노화도에 도착해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갔다.

 

   
▲ 낙서재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산재한 보길도. 먼저 낙서재를 찾았다. 고산 윤선도가 1637년 들어와 1670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이지만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100여m 아래에 곡수당과 함께 서재가 최근에 복원되긴 했지만 찾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낙서재에서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을 20여분 정도 올라가니 고산이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던 동천석실이 자리 잡고 있다. 3,300㎡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관리를 제대로 안해 안타까움을 줬다.

 

   
▲ 곡수당

부용동정원은 고산의 놀이공간으로 세연지와 회수담, 세연정, 세연칠암, 판석보가 유명하다.

 

   
▲ 동천석실

세연지는 시내를 막아 계담을 만들고 소방이라는 배를 띄워 뱃놀이를 했던 곳이며, 회수담은 방형의 연못을 파고 중심에 다시 방형의 섬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고 부용동 8경으로 삼았다.

 

   

 

세연정은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정자를 짓고 정자의 정면에 붙인 이름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해 세연칠암이라는 바위를 설치해 멋을 더했다. 이러한 세연지의 물을 가두는 역할을 했던 것이 판석보로 암반에 판석으로 보를 막아 세연지와 화수담에 물을 공급했다.

   

 

보길도에서의 마지막 답사지는 송시열의 글씐바위였다.

   
▲ 동천석실에서 내려다본 보길도

83세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3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 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산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감격한 외로운 속마음 눈물 지우네

 

   
▲ 동천석실 연못

조선숙종(1689년)때 왕세자 책봉문제로 당파간에 논쟁이 심화돼 우암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를 명하게 되고 유배길에 오른 우암 송시열은 보길도를 지남에 잠시 쉬었다가 석벽에 한시 한수를 남겨 놓았는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시라고 한다.

   
▲ 세연정

노화도에서 점심을 먹고 해남으로 나와 자동차로 완도와 신지도를 돌아 나와 영천으로 돌아오는 1박2일간 1,000㎞가 훨씬 넘는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시간의 여유가 좀더 있으면 신지도 송곡항에서 배를 타고 고금도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한정된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이번에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 사투암

   

   

▲ 판석보

 

   

▲ 아름다운 부용동 정원

 

   

▲ 송시열 글씐바위

 

   

▲ 글씐바위 앞바다

 

   

▲ 장도 청해진 유적지

 

   

▲ 장보고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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