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09. 6. 22. 11:16

                               기린 
                                                             

                                                               송찬호(1959~)
 
 
길고 높다란 기린의 머리위에 그 옛날 산상호수의 흔적이 있다 그때 누가 그 목마른 바가지를 거기다 놀려놓았을까 그때 그 설교시대에 조개들은 어떻게 그 호수에 다다를수 있었을까

 

별을 헤는 밤, 한 때 우리는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다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 노래하며 유성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웃자람을 막기 위해 어른들이 해바라기 머리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을 때 그걸 내려놓기 위해 나는 해바라기 대궁을 오르다 몇 번씩 떨어졌느니, 가파른 기린의 등에 목에 매달려 진드기를 잡아먹고 사는 아프리카 노랑부리 할미새의 비애를 나는 이제야 알겠으니,

 

언제 한 번 궤도열차 표 한 장 끊어 아득히 기린의 목을 타고 올라 고원을 거닐어 보았으면, 멀리 야구장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면 그걸 주워다 아이에게 갖다 주었으면, 걷고 거닐다 기린의 뿔을 닮은 하늘나리 한 가지 꺾어올 수 있었으면,

 

기린이 내게 다가와, 언제 동물원이 쉬는 날 야외로 나가 풀밭의 식사를 하자 한다 하지만 오늘은 머리에 고깔모자 쓰고 주렁주렁 목에 풍선 달고 어린이날 재롱잔치에 바쁘단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에 다시 겅중겅중 뛰어가는 저 우스꽝스런 기린의 모습을 보아라 최후의 詩의 족장을 보아라

 

 

기린의 긴 목이 별을 따는 동화 속으로 떠나보자!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시, ‘만년필’중에서)는 천진한 상상력의 시인이 있다. 충북 보은의 속리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의 밭을 가는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은 우리네 마음까지 천진하게 가꾸어준다.

읽어보시라.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이 숨쉬고 있는지를!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단다. 그 뿐인가?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 노래하며 유성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표현 앞에서는 입이 쩍 벌어지지않는가?

이 쯤 되면, 더 이상의 감상은 오히려 번거롭다. 별을 헤는 밤, 그리고 별똥별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동화로 채색되는 시 한 편을 만나서 여간 행복하지가 않다는 말만 부연해둔다.

 

   
▲ 장병훈 편집위원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