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 송찬호
기린
송찬호(1959~)
길고 높다란 기린의 머리위에 그 옛날 산상호수의 흔적이 있다 그때 누가 그 목마른 바가지를 거기다 놀려놓았을까 그때 그 설교시대에 조개들은 어떻게 그 호수에 다다를수 있었을까
별을 헤는 밤, 한 때 우리는 저 기린의 긴 목을 별을 따는 장대로 사용하였다 기린의 머리에 긁힌 별들이 아아아아- 노래하며 유성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웃자람을 막기 위해 어른들이 해바라기 머리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을 때 그걸 내려놓기 위해 나는 해바라기 대궁을 오르다 몇 번씩 떨어졌느니, 가파른 기린의 등에 목에 매달려 진드기를 잡아먹고 사는 아프리카 노랑부리 할미새의 비애를 나는 이제야 알겠으니,
언제 한 번 궤도열차 표 한 장 끊어 아득히 기린의 목을 타고 올라 고원을 거닐어 보았으면, 멀리 야구장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면 그걸 주워다 아이에게 갖다 주었으면, 걷고 거닐다 기린의 뿔을 닮은 하늘나리 한 가지 꺾어올 수 있었으면,
기린이 내게 다가와, 언제 동물원이 쉬는 날 야외로 나가 풀밭의 식사를 하자 한다 하지만 오늘은 머리에 고깔모자 쓰고 주렁주렁 목에 풍선 달고 어린이날 재롱잔치에 바쁘단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에 다시 겅중겅중 뛰어가는 저 우스꽝스런 기린의 모습을 보아라 최후의 詩의 족장을 보아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