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문엄) 2009. 4. 20. 11:21

책의 등

                
고영민

책꽂이에 책들이 꽂혀있다
빽빽이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있다
등뼈가 보인다

등을 보여주는 것은
읽을 거리가 있다
아버지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다
절교를 선언하고 뛰어가던
애인이,
한 시대와 역사가 그랬다

등을 보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네가
부끄러울까봐
멋쩍게 돌아서주는 것이다

 

 

너의 등에서, 읽을거리를 찾았다

그의 시 ‘우륵’을 보면 “사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音)이 울음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라고 했지. 그렇지, 사내가 눈물을 모르고 어떻게 세상을 얘기하겠는가? 그렇다, 세상을 움직이는 잉크는 시퍼런 울음이지.

나는 ‘책의 등’에서도 눈물을 읽었지. 가끔 등 보이는 책이 싫어서, 책꽂이의 책을 정면으로 꽂아 두었던 적도 있었지. 그러나 이제 생각이 달라졌어. 눈물이 흐르는 너의 눈망울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슬픈 너의 등을 통해서 세상을 알아보는 참맛을 알았던 것이지.

   
▲ 장병훈 편집위원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